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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무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시리즈를 알게 된 것은 동명의 팟캐스트를 통해서였습니다.
대략 10년 전쯤의 일이네요.
팟캐스트를 열심히 들으며 채사장 작가의 '후려치기',
다시 말해 복잡한 체계를 단순화하게 분류하고 정리하여 전달하는 능력에 감탄하곤 했었죠.
이 능력은 책의 형식이나 문체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있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2>는 인문학 입문자에게 좋은 선택지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나온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무한>은 아주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깨달음'에 대한 내용입니다.
채사장 작가의 책을 포함한 여러 콘텐츠를 보아 온 사람이라면 채사장이 의식(혹은 자아, 내면세계)의 문제를 오래 고민하고 연구해 왔다는 것을 알고 계실 텐데요.
이번 책은 그 연구의 결과를 최선을 다해 쉽게 써낸 집대성처럼 보입니다.

책은 크게 7장으로 나뉘는데요, 나의 내면세계에 가 닿기 위한 실천(1~3장), 그것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지혜(4장), 그리고 그 이후에 이어지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5~7장)가 펼쳐집니다.
 
하지만 자신의 자아에 대한 진실은 언어로 서술되어 학습을 하면 이해하게 되는 종류의 지식은 아니니, 
어쩌면 이 책의 내용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다소 적합하지 않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다녀온 북 콘서트에서 채사장 작가는 이 책을 원래 이 '지대넓얕 시리즈'로 묶지 않으려고 했었다는 이야기도 했고요.
 
쉽게 넘어가기 어려운  내용이라, 천천히 이 책을 읽었습니다.
'실천' 파트의 내용은, 아무래도 실천하기 전이므로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 확 와닿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충분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비로소 알게 된다. 내가 텅 빈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님을. 텅 빈 것이 나이고, 텅 비어 있음과 나는 분리되지 않음을. 나는 나지막이 선언한다. 나는 비어 있음이다. 나는 내 안에 머무는 자다. 나는 침묵이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무한> p.127

 
 
4장 '지혜' 파트는 위에 인용한 문장과 같은 경험을 체험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단 그렇다 치고, 하면서 읽기에도 충분히 의미 있고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파트의 여러 이야기 중, 저는 생각의 반복을 윤회의 개념으로 설명한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매력이나 혐오의 감정을 일으키는 생각을 자꾸만 끌어당기거나 밀어냄으로써 생각의 반복이 일어나고,
그것은 본래 고요한 의식이 무엇인가에 마음을 쏟아 자꾸만 세계를 일으키고 생을 반복하는 것과 같다고요.
왜 다시 태어나는 것이 고통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의 반복을 끊어내는 연습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요.
 
'삶' 파트는 그럼에도 현재의 인간의 몸을 뒤집어쓰고 있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설명합니다.
진정한 깨달음은, 내면세계의 진실을 체험한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삶에서 매일 조금씩 더 좋은 사람으로 완성해 나가는 단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심판이나 죄책감 때문이 아니다. 보상이나 인정 때문이 아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내가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이 세계를 일으킨 것도 나고 굳이 이 신체로 이 세계를 경험하기로 한 것도 나임을. 나는 나를 괴롭히지 않으리라. 나는 세상을 미워하지 않으리라. 이제 시간이 되었다. 몸을 일으켜 세상으로 나아간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무한> p.339

 
 
저는 종종 내가 여기에 존재하는 이유, 혹은 내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곤 했습니다.
내 안이 이렇게 시끄러운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고요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요.
정말 진짜 같은 감각 경험이 있었던 꿈을 꾸고 난 다음이나, 몇 번이고 잠에서 깨어나는 꿈을 꾸고 눈을 뜬 후에 현실의 존재를 의심하기도 하면서요.
저는 오랜 시간 동안 심리학에 대한 책을 들여다 보고, 불교 교리를 기웃거리고, 자기 이해에 대한 내용을 공부하면서 외부에서 그 답을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나 자신을 직접 들여다보는 대신에요. 


이 책은 저와 같이 '나'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열망을 뿌리 깊은 곳에서부터 간직한 사람들에게 좋은 입문서가 되어줄 것 같습니다.
'세계'가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시리즈의 앞선 책들이 그랬던 것처럼요.
 
책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침묵 속에서 나를 들여다 보는 실천으로 한 발 더 나아가기를,
어제는 열 번 반복했던 생각을 오늘은 아홉 번만 반복하기를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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